“오늘 아침 폴란드 사회주의 공화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뉴욕의 한 아파트,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에 루드비크는 단 한 사람을 떠올리며 무너져 내린다.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이름, 야누시. 고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기 전에 미처 전할 수 없었던 말들과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마음들을 그러모아, 루드비크는 영영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80년대 사회주의 체제 하의 폴란드는 거대한 감옥과도 같았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체포가 가능했던 처참한 시대. 그 속에서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이 있다. 세계가 요동치고 속수무책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호숫가의 어둠은 이들에게 차라리 찬란했다. 감시의 눈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자유를 허용했으므로.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제임스 볼드윈의 <조반니의 방>을 몰래 읽으며 누군가가 이들을 온전히 이해해준다고 믿었고, 또 함께할 내일을 상상했다. 그러나 어둠이 걷힌 후 돌아온 회색의 도시 바르샤바에서 두 사람이 목도한 것은 어긋남 뿐이다. 체제의 정당성을 믿고 그 안에서 출세하고자 하는 야누시와 자유의 가능성을 믿고 힘껏 부르짖는 루드비크는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며 양극단을 향한다. 시대의 격정 속에서 어긋나버린 사랑. 황량한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서정이 배가한다. 날씨와 공기의 변화마저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깊은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