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피셔 블로그 선집"
이 책의 출간 소식에 잔뜩 흥분한 이들이 많다. 영문 모르는 이들을 위한 간략 소개를 하자면, 저자 마크 피셔는 영국의 비평가로, 그의 이름 뒤엔 '독창적인', '흥미로운', '발군의' 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문화와 정치, 철학을 넘나드는 폭넓고 신랄한 그의 비평은 오랫동안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했다. 특이한 점은 그가 활동한 주 무대가 블로그였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그 시절의 블로그는 단지 글을 발행하는 창구 정도가 아니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여러 주제들에 대해 저마다의 글을 쏟아냈고, 온라인 글쓰기의 형식적 캐주얼함, 즉각성, 상호작용적 특성을 기반으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는 공론장으로서 기능했다. 바야흐로 블로그의 시대에서 넓고 깊은 관심사, 논쟁적인 문체, 좋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섬세한 태도를 갖춘 마크 피셔의 블로그는 글마다 화제를 모으며 블로그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섰다.
그리고 이 책은 마크 피셔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원서로는 단권 벽돌책으로 나온 이 책을 리시올 출판사에서는 주제별로 나누어 총 4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1권에서는 책, 영화, 텔레비전에 관한 비평들을 모았다. J. G. 밸러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에 대한 이야기, 데니스 포터의 작품 분석,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에 대한 날선 비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책과 책을 향한 팬들의 열띈 반응에는 경계 없는 지적 비평을 펼쳤던 그 때의 마크 피셔에 대한 경의와 더이상 마주할 수 없는 그의 정신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의 "시간은 바닥나 버리고 말았"으나 그가 남긴 글들이 남아 우리에게 당도했다.
- 인문 MD 김경영 (2023.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