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사의 정갈한 구조"
15년 전쯤 유행했던 난센스 문제의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를 설명해 볼까 한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522만 원을 줬어. 그런데 노동자는 211만 원만을 받았다고 해. 양쪽의 말은 모두 진실이야. 어떻게 된 일일까? 싱겁지만 무서운 정답은 이것이다. 파견, 도급 업체의 중간착취. 앞에 말한 금액은 실제 고 김용균 씨가 소속되어 있던 원청이 지급한 월급과 그가 받은 월급이다. 사라진 311만원은 누구의 호주머니로 갔나. 파견, 도급 업체의 중간착취는 사실 예전부터 많이 지적되어 왔던 문제라 낯설지 않은데, 이 책의 가치는 100명의 비정규 노동자를 인터뷰하여 실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그 조각조각의 진실을 모아 거대한 착취 구조의 지도를 만들어 낸 데 있다.
악을 외주 주고 책임을 다하는 척하는 원청과 사람 장사로 몸집을 거대하게 불리는 파견, 도급 업체, 그 아래에 개개인의 노동자들은 깔려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엔 양심 없는 욕망이 촉수를 꽂고 있다. 책에는 거머리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빨아가는 돈과 그 돈이 해결했어야 한 생계, 어떤 희망과 의욕의 규모를 살펴보니 그건 거머리라기보단 흡혈귀에 가깝지 않나 싶다. 사람이 바싹바싹 마를 때까지 착취하는. 이 책에서 본 작은 희망이라면, 이 피라미드형 착취의 구조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악의 없는 작은 우연들이 겹쳐 만들어진 커다란 비극은 손쓸 도리 없는 경우가 많지만 뚜렷한 욕망과 이득의 실체가 보이는 구조에서는 법이 개입할 여지도 명분도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저격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