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전쟁, 이념 갈등, 빈부 격차, 기후 위기… 분열과 양극화의
문턱에 선 우리는 어떻게 삶을 개혁하고, 다른 세계를 열어가야 할까?
2,500년 전 실존했던 고타마 싯다르타의 치열하고도 고요한 여정은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말을 건넨다.
나와 세계를 고통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그 위대한 실천 속에
새로운 시대를 향한 평화와 생명, 화해와 통합의 열쇠가 있다.
1. 남북전을 아우르며 신화가 아닌 ‘역사’로 실존한 인간 부처의 삶을 온전히 재구성
2. 우리 말로 편안하게 풀어낸 고타마 싯다르타 연대기로는 보기 드문 책
3. 붓다의 생애와 깨달음(법)의 의미를 실천 수행, 명상과 연결해 명쾌히 해석
4. 초기 불교 경전의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원어와 그 한역까지 총망라한 정성어린 입문서
5. 지금 우리 삶과 사회상을 돌아보게 하는 사유와 통찰의 기록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좋다. 수행과 명상, 영성과 리추얼에 마음을 기울이는 이라면 이 여정은 분명 당신의 내면에 가 닿아, 아직 열리지 않은 우주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평생에 걸친 수행, 특히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의 긴 수행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체득해 온 스님의 연구를 바탕으로, 부처를 이상적 존재나 신앙의 대상이 아닌 실존했던 한 인간으로 재조명한다. 남·북방 불교 사료를 균형있게 다루되 신화적 표현을 배제하고 경전의 핵심과 역사적 사실, 사회적 배경을 함께 살피며 우리와 같은 사람이자 동시에 위대한 스승으로서 부처의 생애를 재구성한다.
지금까지 막연히 알았던 불교는 잊어라! 철저한 수행의 분상에서만 해석할 수 있는 붓다의 삶, 붓다의 혁명, 붓다의 깨달음이 여기 담겨 있다.
『붓다의 수첩』 시리즈는 [담마(Dhamma)]와 [쌍가(Saṅgha)]로 시작한다. 올해 7월 발행되는 『붓다의 수첩 [담마(Dhamma)]』에서는 인도의 계급 구조, 종교, 수행 전통, 생활상, 문화적 맥락을 생생히 재현하여 불교가 탄생할 당시를 이해하는 틀을 마련한다. 이어 부처의 탄생과 성장, 결혼, 출가, 수행,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상세히 서술한다. 단순한 일대기에 그치지 않는다. 붓다는 무엇을 찾아 왕궁을 버리고 떠났나? 무엇을 발견하여 깨달음을 선포하였나? 그것은 불교를 믿든 아니든 우리에게 어째서 이로운가? 명상 수행의 원리와 방법을 부처의 삶과 엮어 하나의 흐름 속에 설명해 낸다. [쌍가(Saṅgha)](2025년 10월 출간 예정)는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 교단을 형성하고 교리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열반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동한 경로, 만난 인물들, 전한 가르침과 행한 이적을 차근히 추적한다. 붓다에 감화되어 귀의한 하나 하나의 인물들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본문 곳곳을 파고드는 주석과 길잡이 구실을 하는 중간 제목까지, 누구나 자신의 눈높이에서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편집했다. 불교 용어나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남아시아 문화가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단어 색인을 덧붙였다. 사전에 필적할 만큼 충실히 정리한 용어와 더불어 여러 종류의 지도를 수록해 독자들도 실존했던 붓다의 여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출가하여 수행 · 전법하는 승려는 물론 불교도가 아니지만 깨달은 이의 삶과 그 사회적 의미를 알고자 하는 일반 독자 및 초심 불자에게 읽기를 적극 권장한다. 빨리어, 초기 불교나 테라와다(남방 상좌부) 불교, 알아차림과 마음 집중, 요가를 비롯한 영성에 관심 있는 독자, 불교에 조금 호기심이 생겼지만 아직은 사찰에 들어가는 것이 겁나거나 부담스러운 이들, 행복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소장하기에도 아름다운 책이다.
누구나 부처님이라는 이름은 알지만 한 꺼풀 열고 들어가면 아리송해지곤 합니다. 부처님은 다른 종교의 신과 같을까? 내가 기도를 하면 어디선가 듣고 소원을 들어주시는가? 절집 불상 앞에서 할머니들이 올리는 기원은 무엇이고,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은 또 무엇일까? 이 책은 부처님을 조금 깊이 그리고 바로 알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단순한 부처님의 삶과 죽음이 아니라 깨달음이라고 하는 법의 기본을 알고자 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부처님이라는 고마우신 분의 삶과 죽음을 기본으로 하되 교리도 조금은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딱딱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부처님의 생애를 통하여 그 분, 위대하신 스승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은 부처님이 고민한 바, 깨달은 바와 가르친 바가 곧 부처님의 삶 한 순간 한 순간과 조금도 어긋남이 없음을,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의 삶과 그대로 이어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0037~0038p.
붓다를 바로 알면 그 존재가 학문으로서 책이나 논문 속에만 존재하거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고색창연한 단청 속에 우뚝하니 앉아 있는 문화재 또는 복을 비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우상(偶像)인 불상이 아니라, 친근한 스승이시자 친절한 벗임을 알게 된다. 붓다는 상상 속의 저 서쪽, 멀고 먼 십만억 세계를 지나야 있는 불국토 극락 세계에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나의 곁에서 바른 길을 가라고 인도하는 길잡이[導師도사]와 같고, 내가 바른 가르침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마치 홀어미가 어린 자식을 생각하는 것처럼 간절함을 놓지 않는 자애롭고 고마우신 분이다. | 스승 붓다는 철저하게 신격화를 거부했다. 자신은 오직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며 길 안내자라고 했지 ‘내가 교단을 이끈다.’든지 ‘내가 빅쿠(bhikkhu)[비구(比丘)]들을 교육시킨다.’라고 생각하지도 말씀하지도 않았다. 붓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곧잘 붓다를 신격화하여 우러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붓다는 언제든지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밝히면서 “육신이 없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겠는가?” 하고 강조했다. 붓다는 신이 아니다. 그 분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그 분에게, 더구나 그 분의 상에 엎드려 빌고 절을 한다고 복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그 분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 스스로 이익과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뿐, 그 분이 직접 복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붓다로써 성립하는 이 불교란 무엇일까? 불교에서 붓다란 또한 어떤 존재일까?
0104~0105p.
붓다 시대[기원전 624?~기원전 544?]를 전후하여 고대 인도 문화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왕권이 강해지고 그에 따라 브라만 계급의 권위가 동요되자 곧 끄샤뜨리야 계급이 사상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정신 문화의 충돌로 이어진다. 붓다의 시대를 ‘끄샤뜨리야 문화의 시기’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브라만들의 낡은 권위는 차츰 빛을 잃어가는 대신 끄샤뜨리야와 부유한 자산가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 『우빠니샤드』를 간단하게 말하면 <베다>라는 ‘하나의 진리를 두고 현명한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설명’한 것이다.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은 『우빠니샤드』를 자양분으로 양육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빠니샤드 시대를 기원전 800년~기원전 200년[기원전 500년 전후 수백년]으로 보는데, 타락한 기존의 브라흐만교 제사를 반대하는 관점이 불교와 비슷했으므로, 나중에 불교가 『우빠니샤드』를 통해 힌두교로 흡수될 수 있었다.
0260p.
과연 그랬을까? 아무리 작은 궁궐 안에서만 살았다고 해서 왕자가 인간의 병듦이나 죽음을 접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대신과 브라만 중에는 늙은이가 한 사람도 없었을까? 마부가 이야기해 주기 전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면 왕자는 실상은 바보가 아닌가? | 왕자는 영특한 학생이었다. 당시의 학문을 통달했고 준비된 왕으로 자신의 국토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의 사정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아버지 숫도다나왕이 출가를 두려워하여 감시하고 궁전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해도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결혼 시합에 출전해 겨루었으며 쾌락도 누릴 만큼 누렸다. 그러한 왕자가 온실의 화초처럼 20대가 넘어서 처음 성 밖을 나갔고 하인인 마부의 입을 통하여 겨우 사람이 늙고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배웠다니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여기서 우리는 장소에 주목하려 한다. 왕자가 본 늙음, 죽음 등은 모두 숲속 길거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무언가 비정상적인 곳이지 않은가.
0290~0291p.
깨달음, 곧 닙바나(涅槃열반, nibbāna)의 지복(至福, bliss)은 수행자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다. 초기 경전에서는 요즘 말하는 불성(佛性, ⓢ Buddhatva붓다뜨와, ⓟ Buddhatta붓다따)이라는 것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고, 더욱이 닙바나를 성취하고자 행하는 순수한 구도 행위인 수행을 하면서 그 결과로 자신에게 온 완전한 깨달음의 기회를 타인을 위하여 보류하는 일도 나오지 않는다. | 기도나 보시 등을 통해 타방 세계(他方世界, lokāntara로깐따라)[ⓟ loka=세계+antara=다른]의 부처나 보살들이 있는 정토(淨土, sukhāvatī쑤카와띠)[sukha=즐거움,bliss+vat=가득한, 지극한]에서 구제를 받기 원하거나, 그 세계의 부처나 보살이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근본 스승인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과는 근본적으로 어긋나게 된다. 고따마 붓다는 스스로 실천 수행하여 자신처럼 깨달음을 성취하고 윤회의 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법을 45년간 거듭 설명했지, 밖으로부터의 구원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0304~0305p.
인도 고전에서 어떤 사실을 놓고 마음에 갈등이 일어남을 표현하는 수법으로 선하고 밝은 일일 때는 언제나 선신인 천신들이 나타나고, 그에 반대되는 의견은 악마나 마라가 나타나 속삭이게 한다. 실제 천신이나 악마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심리를 상투적으로 신의 뜻에 빗대는 것이다. 이때 마라는 자신의 마음에서 어떠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나타나는 심리적 갈등을 상징한다. 좋은 쪽으로 선택을 하면 천신이 이긴 것이 되고 나쁜 쪽으로 선택을 하면 악마가 승리했다고 한다. | 마라가 마음속 갈등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붓다 역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그런 갈등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수행을 통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는 했지만 육체의 갈증, 배고픔이니 병듦이며 제자들의 갖가지 속 썩임 등을 고스란히 겪으며 살아갔다. 우리는 마라가 유혹하는 장면에서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붓다의 모습을 보고, 결국 인간으로서 유혹에서 승리하는 위대한 성자의 모습을 본다.
0309~0311p.
산비탈 나무 아래에 앉아 걸식해 온 음식을 손으로 천천히 뭉쳐서 입에 넣는 순간[인도 사람은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다] 보살은 토할 것만 같았다. 그 장면이 경전에 이렇게 나온다. “보살이 걸식해 온 음식을 입에 넣자 내장이 뒤집히는 듯하며 그 음식이 곧 입으로 다시 나올 것만 같았다. 보살은 일찍이 이런 음식을 본 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 우리의 위대한 스승 붓다가 첫 탁발 걸식 후 공양을 드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단아하게 풀 먹인 옷을 입은 고고한 수도승과는 거리가 아예 멀었다. 제대로 깎지 못한 엉성한 머리칼과 멋대로 자란 수염, 냄새가 꼬릿꼬릿 나는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치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그들이 아침상에 올렸다가 남긴 음식 찌꺼기를 동냥 밥그릇 하나에 다 섞어 담고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다. 햇볕에 까맣게 타고 씻지 못한 손으로 개나 먹을까 차마 입에 넣기 힘든 곤죽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거지 중 상거지 그대로인 그분이 바로 우리가 복을 달라고 애원하고 사정하는 “부처님”이다. | 이 거지 모습의 붓다에게 무엇을 달라고 빌 것인가. 비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의 조건(물질)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0394~0395p.
“붓다는 어떤 수행법을 닦아서 깨달음을 얻으셨을까?” “붓다가 직접 하신 수행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 과연 우리는 이것을 진지하게 의심해 봤는가? 궁금해 하고 있는가? 의미도 모르고 이런저런 수행법을 이런저런 가르침에 따라 이런저런 것은 쉽고 편하여 좋고, 이런저런 것은 어렵고 영험이 없다는 풍문을 따르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엄정하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내어 “위대한 스승, 부처님께서 어떤 수행법으로 깨달았을까?” 하고 의문을 가질 때 부처님의 바른 법을 찾게 된다. […] 경전을 읽고 쓰는(寫經사경) 수행을 했을까? 아니면 염불(念佛)이나 주력(呪力)을 했을까? 108배(拜)를 했을까? 화두를 드는 참선(參禪)을 했을까? 결론은 모두 아니라는 것이다. […] 조금만 따져 보아도 우리가 오늘날 절에서 흔히 행하는 수행의 어떤 것도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했던 그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주류였던 브라흐만교의 제사와 주문을 버리고, 숲속의 고행조차 버린 다음에 무엇을 수행 방법으로 선택했을까. 그리하여 부처의 나심을 선포하고 불교의 교단이 이루어졌을까. 우리가 경전을 보는 것은 바로 이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00.1] | 벼리 말 |
[00.M] | 간략한 지도 |
[00.R] | 일러두기 ① 담마(Dhamma) [01] 알아야 할 이야기 | [02] 격동의 시대에서 | [03] 보살(Bodhisattva)의 하강 | [04] 꽃 보라 흩날리며 | [05] 이름을 짓다[명명(命名)] | [06] 성장과 교육 환경 | [07] 현실에 머물다 | [08] 성 밖을 나가다 | [09] 아노마 강을 건너서 | [10] 고행림(苦行林) | [11] 밝아오는 새벽 | [12] 붓다가 된 법들 |
[00.B] | 참고 문헌 |
[00.C] | 연보 |
[00.M] | 간략한 지도 |
[00.I] | 찾아보기 : 지명 / 인명 / 문헌 / 용어[가나다] / [알파벳] |
법명 성찬(性讚), 상좌부 법명은 아신 쏘빠까(Ashin Sopakā)다. 동진(童眞)[어린 사미승]으로 출가해서, 미룡당(彌龍堂) 월탄(月誕) 종사(1937~2022)를 은사로 모셨다.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田岡) 영신(永信) 선사(1898~1975)에게 사미계를,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고암(古庵) 상언(祥彦) 율사(1899~1988)에게 비구계를 수계했고, 미얀마 양곤 마하시 수도원에서 우 자띨라(U Jatila) 사야도(Sayadaw)(1935~2016)에게 상좌부 빅쿠계를 수계했다. 법주승가대학 사집과를 수료하고, 범어승가대학 대교과와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했으며, 법주승가대학 강주(교수)를 역임했다. 1996년부터 미얀마 마하시 수도원(Mahasi Sasana Yeiktha Meditation Center)에서 안거했으며, 미얀마 찬메 수도원(Chanmyay Yeiktha Meditation Center)에서 3년 결사를 성취했다. 현재 용인 여래향사 법사, 인도네시아 기원정사 종사(宗師)를 맡고 있다
1) 25,650원 펀딩
- <붓다의 수첩 · 담마> 1부
- 후원자명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 140*224mm / 무선 / 560쪽 (예상) / 2025년 8월 18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