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뉴욕에서 태어난 로버트 드 니로는 화가였던 어머니와 화가이자 조각가이고 시인이었던 아버지가 무엇보다도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 탓에 성장기의 대부분을 리틀 이탈리아 거리에서 뛰놀면서 보낸다.
로버트 드 니로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내성적인 아이었지만 열 살 때 학교 연극 <오즈의 마법사>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알게 되고 연기를 하기로 맘을 먹는다. 열 여섯 살 되던 해에는 본격적으로 연극 무대에 뛰어들게 되고 이후 15년 동안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를 돌며 연기를 계속하게 된다. 이 시기에 연기를 시작한 많은 배우들처럼 로버트 드 니로도 역시 리 스트라스버그로부터 메소드 연기를 배웠다. 1963년 로버트 드 니로는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얻어 브라이언 드 팔마의 <웨딩 파티>에 출연하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로 발돋움한 것은 1973년 <대야망>으로 뉴욕 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을 타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같은 해 앞으로 오랫 동안 황금의 콤비를 이룰 감독 마틴 스콜세지를 만나게 되고 <비열한 거리>에 출연하게 된다. 이후 마틴 스콜세지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그의 대표작인 <택시 드라이버>와 <좋은 친구들>에 출연하였고, <분노의 주먹>으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또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2>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타고 1979년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7,80년 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0년대 접어들면서 로버트 드 니로는 그 때까지 주로 연기했던 강하고 파괴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나려 했고, 무기력한 중년 남성이 집착과 광기에 빠지는 <더 팬>과 <대부>의 코미디 버전이라 할 만한 <애널라이즈 디스> 등에 출연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2000년대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져 <미트 페어런츠>, <애널라이즈 디스>의 속편인 <애널라이즈 디스 2 - 애널라이즈 댓> 등에 출연하며 근엄함 뒤에 숨겨진 코믹함을 과시하였고, 2004년 작 <갓센드>에서는 특유의 광끼넘치는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어떤 역할도 소화할 수 있는 뛰어난 연기력과 좋은 역이라면 조연도 마다않는 성실함으로 정상의 위치를 오랫 동안 지키고 있다. 제작에도 여러편 참여했으며, <브롱스 이야기>를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굿 셰퍼드>를 연출하여 명 배우로서의 입지뿐만 아니라 명 감독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