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독일 슐레지엔 지방의 히르슈베르크에서 제지공장을 경영하던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당시 저명한 외과의였던 피르호 교수의 아래서 수련의로 일했으며, 런던에 있던 독일 병원에서도 일했다.
그러던 중 대학 스승인 헬페리히 교수의 추천과 도쿄 대학 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벨츠 박사의 주선으로 1901년 11월 고종의 시의(侍醫)로서 한국에 왔으며 개인 진료소를 열어 민간 의료활동도 했으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인들이 한국 정치를 주도하면서 박사에게 시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종용한다.
그러자 1905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가 벨츠 박사의 후임 자리를 기다렸으나 여의치 않아 유럽으로 돌아갔다가 1908년 독일의 조차지였던 중국 교주(膠州)의 청도(靑島)로 가서 활동했으나 1911년 장티푸스에 걸려 마흔한 살의 나이로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