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인이자 장군. 기원전 100년 7월 12일에 명문가이면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사후 그의 이름은 최고 권력과 정통성의 표상이 된다. 독일 황제 카이저(kaiser)와 러시아 황제 차르(tsar)의 호칭은 카이사르에게서 기원한다.
그는 민중파와 원로원파의 정치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했다.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을 명하는 원로원파 술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망명생활을 택한다. 기원전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한다. 기원전 68년에 재정관, 기원전 65년에 조영관을 거쳐 기원전 62년에 법정관을 지낸다. 기원전 60년에는 폼페이유스와 크랏수스와 더불어 제1차 삼두정치의 주역이 되며, 이듬해에는 집정관으로 선출된다. 기원전 58년에는 갈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해 공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갈리아 지역을 정복하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갈리아 원정 후 벌어진 5년간의 내전에서 승리자가 되면서 로마 제일의 권력자가 되지만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원로원 회의장에서 암살자들의 칼에 쓰러졌다. 그의 나이 5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