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애국계몽운동가.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崇陽山人). 《황성신문》 창간 기자였고, 만민공동회 간부로도 활동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국권 침탈 조약을 규탄하는 글 <시일야방성대곡>을 써서 체포, 투옥되었다. 1909년에는 《경남일보》 주필로도 활동했다. 조선 시대 중인을 비롯한 하층민들의 전기를 모아 편찬한 《일사유사(逸士遺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