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을 피했을 뿐이라고
철 지난 선거 같은 것을 두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는 최소한 시급한 변화가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삶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고 우리의 선택은 여전히
차선과 차악 사이에서 더 오래 머뭇거리고 있지만,
이 분명한 없음과 분별하기 힘든 있음들 사이에서
그리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 있는 사람은
삼나무 숲에서 삼나무를 찾고 있는 사람과 같다.
삼나무 숲에 들어섰으니 삼나무는 찾은 것이나 진배없다고 안심하겠지만
눈앞에 두고 찾지 못하는 맹목이 가장 어둡다.
물론 나는 수 년 전 어느 밤 혜화역에서 택시를 잡아탄 취객이
“대학로 갑시다”라고 큰 소리로 말한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그의 행선지가 궁금했지만
낫 굿 낫 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삶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삶이지만
뜻한 바대로만 되지 않는 삶이라서
이미 읽은 전단지를 한나절 내내 뒤집어 읽는 공터의 바람처럼
필사적이고 간절한 기도가 더 빤하고 평범하기 쉽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너무나 완벽한 있음은 거의 없음과 같다.
너무 화가 날 때는 도리어 웃음이 나고
안하무인에게는 더 엄중한 경어체로 말하게 되지만
간절한 일 분이 평범한 일 분으로 김빠질 때가
영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고, 우리가 더욱 유연해져야 할 시간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에게는 더 벼려진 말보다는
흘려듣기 좋은 말이 필요했다.
2021년 9월
이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