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지휘자인 토스카니니는 9세에 파르마 음악원에 입학하였다. 여기서 첼로, 피아노, 작곡을 배우고 1885년에 졸업했다. 그는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졸도한 지휘자를 대신하여 [아이다]를 외워서지휘하여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에드메아], [팔리아치], [라 보엠]등을 초연하고 당시의 음악가 즉, 베리스모의 작곡가 옹호에 힘썼다. 명성이 높아진 독분에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에서 당시에 아직 평가받지 못하고 있던 바그너의 작품을 토리노의 레조 극장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 이후 많은 작품을 초연하였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연습 장면을 보면 악단들에게 마구 비난의 말을 퍼붓기도 하고 야단을 쳤는데 이러한 면은 그가 모든 레퍼토리를 갈고 닦으려 했던 점에서 이해할 만한 것이다. 토스카니니는 작품과 작품 내부의 노래, 리듬 구조를 존경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베르디, 바그너, 베토벤의 열성적인 추종자였지만 푸치니, 케루비니, 로시니, 멘델스존,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뷔시, 라벨, 코다이 등의 작곡가들의 작품에서도 뛰어난 해석을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