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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성별:남성

국적:유럽 > 중유럽 > 독일

출생:1770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 (처녀자리)

사망:1831년

최근작
2025년 4월 <세계사의 철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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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3세 때부터 독일어 학교를, 5세 때부터 라틴어 학교를 다녔다. 1788년 튀빙겐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와 생활 방식에 염증을 느껴 철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횔덜린, 셸링과 친분을 맺고 교유하기 시작했다. 1789년 19세의 나이로 목도한 프랑스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철학을 전개해 나가는 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1801년 10여 년의 가정교사 생활 끝에 셸링의 도움으로 예나(Jena)에 정착했으며, 「행성들의 궤도에 대하여」로 하빌리타치온(교수자격취득)을 취득했다. 아울러 같은 해에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를 발표해 자신의 철학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1805년 2월 예나 대학에 비정규 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이때부터 『정신현상학』(1807년 출간) 집필을 시작했다. 1807년 『밤베르크 신문』 편집인을 맡았으며, 1808년에는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직에 있기도 했다. 1811년 마리 폰 투허(Marie von Tucher)와 결혼했으며,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초빙되어 정교수가 되었다. 1817년 『엔치클로페디』를 발표해 프랑스혁명 이후 정립된 근대적 이념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철학 체계의 구축을 시도했다. 이 시기에 독일 사회에서 한창이던 헌법에 관한 논쟁에 뛰어들어 현실 문제에 적극 발언하기도 했다. 1818년 베를린 대학으로부터 초빙되어 10월 정교수로 취임했으며, 1830년 총장직에 오르기도 했다. 1831년 11월 14일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소망에 따라 피히테의 묘지 옆에 안장되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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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엔치클로페디 : 제1부 논리의 학> - 2024년 3월  더보기

오직 학문의 전체만이 이념의 서술인 까닭에 철학에 대해 잠정적인 일반적 표상이 주어질 수 없듯이, 또한 학문의 구분도 오직 이 이념으로부터만 비로소 개념 파악될 수 있다. 학문의 구분은 이 구분이 그로부터 취해져야 하는 이 이념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선취된 것이다. 그러나 이념은 자기를 단적으로 자기와 동일적인 사유로서 입증함과 동시에 이 사유를 대자적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자기에게 맞세우고 이러한 다른 것[타자] 안에서 오직 자기 자신 곁에만 존재하는 활동성으로서 입증한다. 그래서 학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Ⅰ. 논리학, 즉 자체적이고도 대자적인 이념의 학문, Ⅱ. 자기의 타자존재에서의 이념의 학문으로서 자연철학, Ⅲ. 자기의 타자존재로부터 자기 안으로 되돌아오는 이념으로서 정신의 철학.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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