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털었다.
오래 묵혀둔 장아찌, 묵은지, 된장…
갓들인 과일과 채소들이 쏟아져 나온다.
냉장고 안은 언제나 질서가 없다.
그날그날 중요도가 달라지고 자리는 바뀐다.
파일의 뒤섞임
지나간 유효기간
묵은 찬거리를 다른 질서로 바꾸는 것은 요리사의 본분
7년간이나 요리도 해보고 조리도 해보았지만
요리는 언제나 열 손가락 안의 법칙
모두가 세상의 일이다.
어쨌든 나는 단맛은 줄이고
쓴맛에다가 해학의 조미료를 쳐서 새로운 풍미를 내려고 나름 애썼다.
거기다 새로운 그릇에 담아내려고 시도했지만
차리고 보니 세상사 식탁이다.
어디서든 이 요리를 맛본 ’문수보살 님‘이 맛있다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면 보람이리라.
작가는 변주를 먹고 산다.
이다음은 어떤 변주가 나를 찾아올지,
아니, 내가 어떤 변주를 찾아 나설지 그게 더 설렌다.
컴퓨터란 냉장고를 털어 내니 숨쉬기가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