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꿈은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 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만약 내게 사랑과 모정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꿈과 현실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이제 곧 내 고향 고흥 땅에는 하얀 오랑캐꽃이 피고, 참꽃도 애처롭게 피어날 것이다. 건넌뱅이 언니 등에 없혀서 본 살구나무도 다시 연분홍 꽃을 피울 것이고.
꽃을 좋아하던 할아버지 덕분에 뜰 가득 환하게 꽃이 피어 있던 옥하리 외가 초가집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짜야, 짜야' 부르시던 외할아버지, 귀염머리 땋아 주시던 외할머니. 밥도 맛나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도 재미나던 옥하리 외가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1979년에 처음 이 책을 펴냈는데 거의 30년 만에 다시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인다. 내 나이 쉰셋이 되던 그해에 이 글을 쓰면서 내게 남은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졌고, 30년을 더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까지 꼭 30년을 더 살았다. 그동안 여기저기 세상 구경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전시회도 몇 번 열었다.
이제 내게 남은 힘이 없다. 지나간 일만 생각날 뿐이다. 그리고 내게 남은 시간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