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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문턱

시를 읽는 시간

여름 피치 스파클링
차정은 지음

이 편지는 복숭앗빛 여름 아래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편지에는 달콤하지만 끈적한 마법이 스며들어 한번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달콤한 마법을 해제하는 방법은 이 편지를 5명에게 24시간 이내에 전달하는 것. 루시 17세는 이 편지를 5명에게 보낸 그날 저녁 바닷가에서 복숭아 주스를 공짜로 얻었습니다. 토마스 24세는 불금의 회식에서 도망쳤지만 아무도 그걸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정모 씨는 이 편지를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고, 그날 밤 짝사랑하던 사람에게서 DM을 받았습니다. “너 진짜 여름 같다.”라고 하면서요. (…)

「FRUIT HEX FILES」중
나의 인터넷 친구
여한솔 지음

네가 있는 화면을 꾹 눌러 본다. 네 화면으로 내가 조금 나왔을까. 우리가 손을 잡는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가 되진 않지, 응 알지. 복도를 걷는 동안 네가 나의 가설이라 슬퍼지고 전시실 건너편에서 너를 보면 여긴 멸종 위기의 사이버, 마지막 통신이라고 믿게 된다.

「안드로이드 기술관」중
시와 물질
나희덕 지음

미안해요, 물구나무종이 되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워졌어요

머리에 피가 쏠리는 걸 견디기 어렵고
팔목은 발목보다 훨씬 취약해요
두 팔을 땅에 대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어요

직립보행의 나날이 너무 길었나봐요

물구나무종, 당신은
손으로 걸어다니는 새로운 인류

「물구나무종에게」중

한번쯤 찾아오겠다던 사람이 온다던 여름에
사람은 안 오고
오지 말라는 일들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서글픈 이야기는 아니고요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적은 언제인가요?”
살지 않아도 될 때요

그렇게는 대답 못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그런 삶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좋지 않았던 건 아니고요

(…)

온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고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이에요」중
자꾸만 꿈만 꾸자
조온윤 지음

네 꿈을 살게
나는 꿈을 모으는 사람이거든
등장인물이 많은 꿈이라면 좋겠어

객실의 끝이 안 보이는 기나긴 열차 같은 꿈
경유지는 목마른 이들을 위해 물켜는 새벽
한낮에 모은 선명한 장면을 토큰처럼 들고 온다면
누구든 들락날락할 수 있는 꿈

「꿈 아카이브」중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살아 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아직도 빗속을 걷고 작약꽃을 바라봅니다

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음어 주세요, 말해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취급이라면」중
오렌지
웬디 코프 지음, 오웅석 옮김, 유수연 감수

그 오렌지 덕분에 너무도 행복했어,
평범한 일들이 종종 그렇지,
특히나 요즘에는. 장을 보는 일도. 공원을 거니는 일도.
모든 게 평화롭고 만족스러워. 새삼스럽게도

「오렌지」중

- 너는 아름답다는 말이 되게 쉽게 나오더라
- 그게 나쁜 일인가

「빛」중

사람들에게 휩쓸려 잡고 있던 손은 놓치고 가방까지 어딘가에 흘리고 그렇게 서로를 잃어버렸을 때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처음 든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 네가 나를 찾을 필요는 없어 내가 너를 찾을 거야

「미아」중
조이와의 키스
배수연 지음

*
조이의 어금니 중 하나는 박하사탕일 것이다
나는 늘 그 안쪽을 열심히 핥아 주고 싶었다
조이네 집 아치 위로 무거워지는 장미
조이는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까

「조이와의 키스」중
촉진하는 밤
김소연 지음

생일 축하해
i는 파피루스가 담긴
수반을 내게 내밀었다

생일 아닌 거 알아,
네 생일에 올 수 없으니
내가 오는 날에 태어나주렴

i는 치아를 드러내고 크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i에게 수반을 건네받았다

이번에는 나에 대해서 시를 쓰지 마
i는 팔짱을 끼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럼 나는 무엇에 대해 시를 쓰지?
옥상에 대해? 파피루스에 대해?
생일에 대해?
팔짱에 대해?

「머리말」중

이 장면은 항상
해와 그림자가 기쁨과 후회가 같은 빈도로 길어지던 여름 한가운데서 시작된다

「sparkle」중

질리지 않는 건 없어

세탁기 안에 커다란 쿠로미 인형을 넣고 돌린다
쿠로미는 비눗물 속에서 패대기쳐져도 처참해지지 않네

어제는 친구들에게 나눠 줄 책갈피를 만들었지
구슬을 주렁주렁 매달수록 무거워지는
기쁨

바닷가의 모닥불을 상상해 봐
빛나는 것은 넘치지 않아

그런데 왜 추운 곳에서 더위를 생각하거나
따뜻한 곳에서 추위를 생각하는 건 쉬울까

「한 가지 비눗방울」중
오늘의 시
박소란 외 지음

용각산 두 스푼, 캘리포니아산 건포도 한 알, 오만 원짜리 네 장
저승 노자라는 것, 미신이든 아니든, 어쨌든 내일은 면회 오지 말 것, 하루쯤 쉴 것,

나는 급히 메모장을 열어 적는다
고맙다,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으마,
마지막은 역시 사랑?

사랑, 요양, 병원, 213호,

이런 걸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오늘의 시」중
콜드 리딩
강혜빈 지음

멀리서 미러볼이 빛나기에
춤을 췄습니다
미래를 다 보고도 모른 척했어요
목 조르다 말고 핥았습니다
수요일이 되면 늘 궁금했죠
언제까지 건강해야 하나요
고층에서 내려다봐도 되나요
큰 인물 되기 싫어요
아무나 되겠습니다
이렇게 심심해도 되나요
지구에 무임승차 되나요

「초전도체」중

선생님
제가 사랑이 없습니다

(…)

어제도 누가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 하고 물었는데
보내주신 멸치볶음은 감사히 잘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인사말로는 부족합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친절보다 더 나은 약속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밤이 계속된다면

「오늘 서울 날씨」중

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민구요. 그럼 성은? 민이요. 선생님은 또래 아이들이 있는 강의실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는 말했다. 자, 모두 주목. 오늘 우리 학원에 새로 들어온 민민구 학생을 소개할게.

나는 수업료 봉투에 적힌 이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재현학원 5학년 민민구. 세상에 없는 이름. 그것은 인명사전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민구, 신민구, 한민구는 존재하지만 민민구는 이 나라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는 거기에 있겠다고 했다」중

우리는 우리를 방류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거기에 홀로 있고 당신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나도 다음 열차로 올라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답답하게 올라가니 슬픔보다 더위가 나를 지배했습니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에 먼저 반응합니다 땀흘려 이룬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사랑이 먼저 흘러가버렸네요 흐름의 시작을 찾을 수 없는 유수와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소양강 소로우」중
기대 없는 토요일
윤지양 지음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선생님은 믿지 못할 거예요
너무하네
내가 이해심 없는 사람으로 보이니
아뇨 선생님은 사려 깊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집의 이야기를 안다고 해서
그 집 벽에 기대어 벽지를 핥는 것은 아니죠

「직물」중

묘사가 금지된 장소에 대해
나는 말하기 시작한다
바케크라고 한대요, 그 사람이 세우는 게시판을, 이탈리아어인지,
어떤 벽 같은 거래요
그러니까 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고

안내판 같은 건가요?
기사가 처음으로 말한다

「바케크, 침묵, 날씨 같은 것」중
아사코의 거짓말
박은정 지음

-이건 먹을 수 있는 거야?
-나도 처음 보는 열매인데……
-그럼 내가 먹어 보고 말해 줄게
-목숨을 걸고 싶을 만큼 먹고 싶은 건가?
-우연에 목숨을 맡기는 거지. 독이 든 열매면 다행이고, 독이 든 열매가 아니라면 목숨이 하나 더 생기는 거야.

누가 이런 꿈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만
매번 틀리고 마는 문제처럼

「유칼립투스가 그려진 침대」중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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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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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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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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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우석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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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정은귀 옮김
11,200원 / 5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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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정은귀 옮김
10,500원 / 5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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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
셰이머스 히니 지음, 허현숙 옮김
9,100원 / 4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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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도깨비 시장
크리스티나 로세티 지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그림, 정은귀 옮김
11,200원 / 5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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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조지 고든 바이런 지음, 황동규 옮김
7,000원 / 3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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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묘지
폴 발레리 지음, 김현 옮김
7,000원 / 3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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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최종술 옮김
9,800원 / 4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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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풍속
김기림
3,000원 / 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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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
이용악
3,000원 / 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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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
이용악
3,000원 / 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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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시집
이육사
3,000원 / 150원
종이책 정가 대비 21% 할인
카프 시인집
김창술
3,000원 / 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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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백석
3,000원 / 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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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
임화
3,000원 / 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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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집
정지용
3,000원 / 150원
종이책 정가 대비 21% 할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3,000원 / 150원
종이책 정가 대비 21% 할인
망향
김상용
3,000원 / 150원
종이책 정가 대비 21% 할인
루미 시집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지음, 정제희 옮김
8,400원 / 4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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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11,200원 / 5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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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이소연 지음
7,000원 / 3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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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시선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7,300원 / 3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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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우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9,100원 / 4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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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테로와 나
후안 라몬 히메네스 지음, 박채연 옮김
7,800원 / 3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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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11,760원 / 580원
헤르만 헤세 시집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11,760원 / 5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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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26,000원 / 1,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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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웬디 코프 지음, 오웅석 옮김, 유수연 감수
8,400원 / 4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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