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5일 :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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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단 한 사람> 최진영의 창작 노트

지난 주 폭풍처럼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 지나가고 맞는 첫 주입니다. 저희 출판사, 서점 직원들은 이 시기를 앞두고 최소 3개월 전부터 이 날에 관한 생각을 시작해 이 즈음이면 회고하고 체력 충전하고 미뤄둔 일을 하고 하반기를 계획하곤 합니다. 저도 참관객으로 행사장을 다녀보았는데요, 주문번호로만 연결된 손님 여러분 혹은 독자 여러분 혹은 문학 같이 읽는 선생님들이랑 스쳐지나가니 이 모든 게 진짜구나 싶어서 한번씩 더 둘러보게 되고 그랬습니다. 행사에 직접 참여하신 출판인 선생님들도 실재하는 독자와 말 나눠보시고 지속할 힘을 얻었다는 얘기를 전해주셔서 또 찡했습니다. 오늘은 마침 제가 읽고 있는 책에도 이 비슷한 얘기가 있어 인용으로 적어봅니다. '이야기는 읽는 이가, 노래는 듣는 이가 있을 때여야만 완전한 생명력을 갖는다. 연결은 협업이다. 글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걸 읽는 이가 있어야 한다.'(<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인터뷰집)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여름, 첫 책'으로 소개된 소설가 최진영의 창작노트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을 소개합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매일 글을 쓴다.'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움직입니다. <구의 증명>,<이제야 언니에게>,<단 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이야기를 꾸준히 만난 독자는 주머니 안에서 글을 굴리는 동안 이 작가의 글이 움직였고, 그 움직인 글이 또 독자를 들어다 다른 자리에 두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일기 같기도, 아포리즘 같기도, 선언 같기도 한 메모들은 드문드문 이어지며 소설이 되는 순간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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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쪽 : 나에게는 그 세계가 있으니까 현실에서 쓸쓸해도,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현실의 인물과 상황에 상처받거나 외면당하더라도 소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이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등장하는 사람들은 자기 박자대로 걷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민음사TV '말줄임표' 코너 등을 즐겁게 보신 분들은 출판인 정기현이 말하는 리듬을 알고 계실 듯해요. 첫 책을 출간하고 요즘은 어떤 바이브로 나날을 보내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A : 출판인들의 거대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이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6월 23일 기준으로 바로 어제 끝이 났습니다. 도서전이 임박해 올수록 회사에 있을 때도, 첫 소설집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계속 되뇌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짐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도 있어서 그 와중에도 예상치 못한 실수들이 발생하였지만요. 그런데 이제는 모든 생활에 힘을 꽉 주게 만들던 행사가 끝이 난 만큼 한동안만이라도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내 보려고 합니다. 당장 도서전이 끝난 날인 어제, 일요일만 해도 오전 근무를 마치고 여러 부스들을 돌며 책을 잔뜩 샀어요. 쌓인 책들을 한 권 한 권 까먹으면서 조용한 저녁을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 기쁩니다. 산 책들 중 가장 먼저 집어든 것은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책입니다. 신랄함과 아름다움이 섞인 문체가 독특해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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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2025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소개된 도서를 한 권 더 소개합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 소들이 모여 사는 ‘희망 목장’을 찍은 정주하의 사진 연작 <파라-다이스>와 이에 응답한 백민석과 황모과의 소설 두 편이 묶였습니다. 2023년 가을, 재일조선인 작가 고故 서경식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책이 서경식 작가의 마지막 기획으로 남을 듯합니다.

사진 속 검은 소는 유령처럼 배회하는 모습으로 불안함을 안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모습으로 여유로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여 소를 죽이지 않고 먹이를 주는 목부가 있어 사람들은 그곳을 이제 ‘희망 목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아이러니를, 소의 눈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보고 싶은 책입니다. 그 눈에 우리의 현재가 비쳐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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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프시케의숲

프시케의숲에서 첫 한국소설을 냈어요. 김기창 작가의 《화성의 판다》입니다. 화성 개척의 임무를 맡은 대원 ‘그레이’의 발신 이메일로 이루어진 서간체 소설이에요. 아무래도 편짓글인 만큼 독자에 말을 건네는 듯한 친밀한 문체입니다. 사실 작가님은 그동안 꽤나 하드보일드한 건조한 문체의 소설을 써오셨는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 에세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설을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에세이-소설’이죠.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프시케의숲 부스를 장식한 것은 《화성의 판다》에서 가져온 문장이었어요. “내 안에 작지만 반짝이는 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모든 게 쉬워져요.” 그레이의 이메일에서는 눈길이 머무는 문장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세이적인 문장의 힘이 소설적으로 구현되었다고나 할까요?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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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고 멋있는 표지

표지가 달라지거나 판형이 달라지면 판형마다 책을 모으는 분들도 계시지요? 저도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처럼 문지 명작선 버전으로, 소설집 3부작 버전으로 가지고 있는 책들이 종종 있는데요...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선보인 새로운 표지의 책들이 있어 함께 소개해봅니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로 올랐던 영국판 소설의 표지화가 사용된 양장본 <저주토끼>가 10만 부 돌파를 기념해 출간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 24개국에 출간된 <저주토끼> 중 많은 저주 토끼가 그래픽 디자이너 최재훈의 이 그림을 표지로 채택했다고 합니다. 박소란, 박준, 황인찬 등의 시인이 참여한 시절 시집 '도넛을 나누는 기분'도 스위트 에디션으로 도서전에서 새롭게 독자를 만났습니다. 도넛 박스 같은 표지가 읽는 재미, 선물하는 재미를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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